애완동물

고양이는 왜 긁을까? — 긁는 행동의 과학적 이유

쑤억 2025. 4. 4. 21:48

1. 긁는 행동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다

고양이를 키우다 보면 가장 자주 목격하게 되는 행동 중 하나가 바로 ‘긁기’이다. 소파, 벽지, 매트, 가구 다리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긁는 이 행동은 집사 입장에서 골칫거리가 되기 쉽다. 하지만 고양이 입장에서 긁기는 단순한 장난이나 버릇이 아니라 본능적이고 생존과 밀접하게 연관된 행동이다. 고양이는 야생에서 나무를 긁으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발톱을 다듬고, 근육을 스트레칭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이처럼 긁기에는 다양한 목적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으며, 현대의 반려묘도 그 본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종종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긁는 행동을 ‘훈육’으로 억제하려는 것이다. 고양이는 개와 달리 외부 지시에 따라 행동을 수정하기보다는 스스로의 감정과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긁기를 억지로 막으려 하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 긁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적절한 대안을 제공해주는 것이 가장 건강한 해결책이다.

 

 

2. 긁기를 통한 발톱 관리와 신체 단련

고양이의 발톱은 사람의 손톱처럼 계속 자라지만, 훨씬 빠르고 날카롭다. 긁기를 통해 고양이는 낡고 죽은 발톱의 껍질을 벗겨내고, 날카롭고 건강한 새 발톱을 유지한다. 이 발톱은 사냥, 방어, 점프 시 중요한 도구이며, 특히 실외 환경에서는 생존과 직결된다. 실내에서 살아가는 고양이에게도 이 기능은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에 긁기 행동은 필연적이다.

또한 고양이는 긁을 때 앞발을 앞으로 쭉 뻗고, 등과 어깨 근육까지 사용하는데, 이는 고양이의 근육 단련과 스트레칭 효과를 동시에 가져온다. 특히 잠에서 깬 직후 긁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몸을 깨우고 근육을 풀기 위한 일종의 ‘기상 스트레칭’이다. 고양이의 유연한 몸놀림은 이러한 일상적인 근육 사용에서 비롯되며, 적절한 긁기 행동이 제한되면 운동 부족과 근골격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덧붙여, 발톱이 과도하게 길어지면 고양이 자신은 물론 보호자에게도 상처를 줄 수 있다. 긁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발톱을 관리하지 못하면 수의학적으로 ‘내성 발톱’이 생길 수 있으며, 이는 통증과 염증을 유발한다. 따라서 긁는 행동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건강을 유지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3. 영역 표시 수단으로서의 긁기

고양이는 철저한 영역 동물이다.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고, 외부 침입자에게 ‘여기는 내 구역이다’라고 알리기 위해 다양한 신호를 사용한다. 그 중에서도 긁는 행동은 후각과 시각을 동시에 활용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고양이의 발바닥에는 ‘종자샘(pedal glands)’이라는 특수한 분비샘이 있어 긁는 동작을 하면서 페로몬을 표면에 남긴다. 이 체취는 다른 고양이나 동물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한 긁은 자국은 시각적으로도 도드라지기 때문에 다른 고양이에게는 명확한 경계선 역할을 한다. 다묘 가정에서 고양이들이 각자 선호하는 스크래처를 정하거나, 특정 장소를 두고 갈등을 벌이는 경우도 바로 이 ‘영역 표시’ 기능 때문이다. 특히 출입문 근처, 사람의 손이 자주 닿는 가구, 창가 등은 외부 자극이 많은 곳으로 고양이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주요 영역이다.

만약 고양이가 특정 장소만 과도하게 긁는다면, 단순한 습관이 아닌 불안정한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신호일 수 있다. 특히 이사 후, 새로운 가족 구성원 등장, 다른 동물 입양 등 환경 변화가 있었을 경우 이런 행동이 더욱 두드러질 수 있다. 이때는 긁기 자체를 제지하기보다는 긁기를 대체할 수 있는 환경적 해결책이 필요하다.

 

 

 

4. 스트레스 해소와 감정 표현의 수단

고양이는 말 대신 행동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긁기는 고양이가 불안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자주 나타나는 행동 중 하나다. 특히 갑작스러운 소음, 낯선 사람 방문, 다른 동물과의 마찰 등 외부 자극이 있을 때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긁기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진정시키려 한다. 이를 ‘자기 진정 행동(self-soothing behavior)’이라 하며, 긁기를 통해 고양이는 마음의 긴장을 완화한다.

반대로 기분이 좋을 때 긁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을 때, 놀이 후 흥분이 남아 있을 때, 혹은 간식을 먹은 직후 긁기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긍정적인 감정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양이마다 긁기를 통해 표현하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다르기 때문에, 평소 고양이의 긁는 빈도와 상황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긁기 행동이 갑자기 늘어나거나, 특정 시간대에만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 그 배경에 스트레스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때는 긁기를 제지하기보다는 스트레스 요인을 분석하고 제거하는 접근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외부 고양이의 출현이 원인일 경우 커튼이나 가림막을 통해 시각적 차단을 시도하거나, 펠리웨이 같은 합성 페로몬 디퓨저를 활용해 안정감을 줄 수 있다.

고양이는 왜 긁을까? — 긁는 행동의 과학적 이유

 

 

5. 긁는 행동을 건강하게 유도하는 방법

긁기는 억제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다. 고양이의 긁기 본능을 존중하면서도, 가정 내 피해를 줄이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은 바로 ‘스크래처’다. 시중에는 골판지형, 천형, 나무형, 카펫형 등 다양한 재질의 스크래처가 있으며, 고양이마다 선호도가 다르기 때문에 여러 종류를 시도해보는 것이 좋다. 또한 수직형과 수평형 스크래처를 함께 제공하면 긁는 동작의 방향성에 따른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설치 위치도 중요하다. 고양이가 자주 다니는 동선, 잠자리 근처, 창문 주변 등 영역 표시가 필요한 곳에 스크래처를 두는 것이 이상적이다. 긁기를 유도하고 싶은 장소에는 캣닢을 뿌리거나 간식을 활용한 클릭 트레이닝 기법을 적용할 수 있다. 반대로 긁으면 안 되는 가구에는 고양이가 싫어하는 질감(양면 테이프, 알루미늄 포일 등)을 활용하거나, 특수한 훈련 스프레이를 사용할 수 있다.

긁기를 성공적으로 유도했을 때는 즉시 간식이나 칭찬을 통해 긍정 강화(P.R.)를 해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고양이는 보상에 민감하며, 긍정적 경험이 반복되면 습관 형성이 빨라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양이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의 목적을 이해하고 그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고양이는 심리적 안정과 동시에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할 수 있다.